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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세훈 2심 무죄 판결은 법에 따른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인가?

"법대로 하자"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믿음과 씁쓸한 현실'단 1%의 합리적 의심'이라는 방패가 권력자들의 성벽이 되기까지'동물농장'의 특권 구조를 닮아가는 사법 현실과 시민의 역사적 경고

[지금은 文話 시대]-14

"In dubio pro reo(인 두비오 프로 레오).“

[서울=뉴시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서울고법 제공) 2026.10.23.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서울고법 제공) 2026.10.23.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뉴시스


평범한 상식과 법의 기대

오세훈의 유무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죄가 있으면 유죄, 없으면 무죄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이자 법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서민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면 "법대로 하자"고 말한다.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In dubio pro reo(인 두비오 프로 레오)"라는 라틴어 법언, 즉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언급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과연 이 대원칙은 우리 사회 모든 이들에게 예외 없이 평등하게 적용되고 지켜지고 있는가?

기울어진 운동장, ‘피고인의 이익’이라는 특권

근대 형사법의 이 고결한 원칙은 국가가 무고한 개인을 권력으로 짓밟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만든 시민의 방패다. 그러나 오늘날 이 방패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보다, 법조 카르텔과 막강한 자원을 쥔 권력자들이 사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도록 허용하는 가장 정교한 성벽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국민을 깊은 허탈감에 빠뜨리는 것은, 왜 재판부와 판사에 따라 법의 적용 기준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달라지는가 하는 점이다. 1심에서는 유죄로 엄중히 단죄되던 사안이 2심 재판부의 성향이나 해석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무죄로 바뀐다면, 그것은 법의 객관적 정의라기보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복불복 사법’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할 법이 판사 개인의 재량과 판단 폭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그것을 과연 온전한 ‘법의 정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법은 형식적인 공정함을 외치지만, 실질적 운동장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다. 수억 원대 수임료를 치르는 대형 로펌과 전관 변호인단이 구축한 철벽 방어망 속에서, 권력자들은 ‘1%의 의심’을 조각해 낼 특권적 자원을 독점한다. 반면 변론의 기회조차 촉박한 평범한 피고인들에게 그 ‘1%의 요행’은 사치에 불과하다.

침묵하는 성역, 성찰 없는 사법부

그럼에도 사법부는 이러한 거대한 불신과 냉소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갈수록 땅에 떨어지는 사법 신뢰에 대해 사법부는 진정 어떤 성찰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무결점의 성역’이라도 되는 듯 오류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직 ‘엄정한 법리 적용’이라는 기계적 방패 뒤에 숨어 대중의 상식과 법감정 사이의 괴리를 외면하고 있다.

어째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이토록 격한 토론과 공방이 이어지는가. 그것은 결국 대다수의 국민이 그 판결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법을 위해 법이 존재하지 않듯이, 판결 또한 판결 그 자체만을 위한 고립된 성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법은 결국 상식을 가진 국민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를 향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법적 판단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할 때, 각자의 생각과 논리는 진영의 무기가 되어 상대를 비난하며 격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 끝에서 남는 것은 찢긴 공동체의 분열과, 우리 사회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깊은 갈등의 상처뿐이다.

시민의 경고와 사법부가 나아갈 길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는 독재 돼지들이 수정한 기만적인 계명이 나온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오늘날 우리의 사법 현실 역시 "모든 피고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보다 더 평등하다"는 식의 변질된 특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정교한 법리의 탈을 쓴 채 기득권만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동물농장'으로 추락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 사법부는 침묵과 방어의 성벽 밖으로 걸어나와 뼈를 깎는 자성과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오류 없는 성역으로 여기는 오만을 버리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의 눈높이에 맞춰야 할 것이다.

만약 사법부가 끝내 자기 성찰을 외면하고 기득권의 성벽 뒤에 숨어 지낸다면, 시민들의 개혁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결국 주권자의 힘에 의해 개혁당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촛불 혁명으로 부정한 권력을 몰아냈고, 빛의 혁명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헤쳐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든 피고인은 법 앞에 진정으로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그 평등이 오직 권력과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만 유독 ‘관대한 이익’으로 작용하고 사법부가 시대정신과 사회적 공감을 상실한 판결을 계속 한다면, 법치는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 될 뿐이다. 진정한 정의는 차가운 법조문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공감과 신뢰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는 것을 사법부는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최승호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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