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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화(文話) 시대 위기의 영화 산업, 한·프 ‘뤼미에르 동맹’이 세상을 밝히려면

생폴드방스발 1.6조 마중물, 글로벌 문화 정책 주도권 확보 계기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한·프 ‘뤼미에르 파트너십’ 발표 현장 (사진=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한·프 ‘뤼미에르 파트너십’ 발표 현장 (사진=대통령실 제공)

K-무비의 르네상스가 열리던 2000년대 초, 자본의 문법에 갇히지 않던 시절의 글로벌 무대는 늘 한국 영화가 품은 날 선 ‘야성(野性)’과 독창성에 깊은 찬사를 보냈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같은 거장들의 시선과 더불어, 대형 자본과 비상업 예술 영역이 균형을 이루던 생태계의 역동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한국 영화계의 기류는 현격히 달라졌다. 산업 현장에서 들려오는 진단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극장 관람객 감소, 글로벌 OTT의 독점적 시장 재편, 그리고 대본과 영상을 몇 초 만에 만들어내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한국 영화를 넘어 전 세계 영상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자본은 극도로 보수적으로 변했고, 독창적인 실험이 설 자리는 빠르게 사라졌다.

이 같은 침체 속에서 타전된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발 소식은 문화계에 무게감 있는 화두를 던진다. 7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뤼미에르 서밋’을 주재하며 발표한 ‘뤼미에르 파트너십’ 출범 이야기다. 5년간 1조 6,000억 원(10억 유로)이라는 거대한 재원이 투입된다는 규모도 눈길을 끌지만, 더 주목할 부분은 개막 연설에서 제시된 ‘빛(Lumière)’이라는 상징성이다.

1895년 세계 최초로 영화를 세상에 선보인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이름을 딴 이 파트너십은 단순한 재정적 합작에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는 혁신과 창의성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비결”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기술 격변 속에서 인간의 창작권을 지키고 독립·예술영화라는 뿌리를 살려내겠다는 문화적 선언을 담고 있다.

AI 공급망의 핵심국인 한국의 기술·콘텐츠 역량과, 정통 예술 영화 정책 노하우를 보유한 프랑스의 결합은 의미가 깊다. 자본 논리에 휩쓸리던 글로벌 영화 지형도에 실질적인 문화적 방파제를 세운 격이다. 한국 창작자들이 유럽 현지 세제 혜택과 유통망을 타고 글로벌 무대로 진입할 통로가 넓어졌다는 점도 현장이 기대하는 대목이다.

다만 영화 산업의 흐름을 오랫동안 관찰해 온 입장에서 냉정한 경고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영화사(史)에서 거창한 펀드나 정상 간의 화려한 선언이 정작 현장 창작자들의 체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실효성 없이 사라진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1.6조 원이라는 거대한 마중물이 거대 기획사나 대형 OTT의 잇속으로 쏠리지 않고, 지금도 골방에서 밤을 새우며 시나리오를 쓰는 청년 감독과 독립영화 현장의 밑바닥까지 스며들어야 한다. “독립영화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약속이 결실을 보려면 자금 배분의 정밀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국내 법·제도 개선이라는 묵직한 후속 작업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프랑스어로 ‘뤼미에르’는 빛을 의미한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라는 빛을 처음 쏘아 올렸듯, 이번 한·프 파트너십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영화계에 일회성 뉴스를 넘어선 실질적인 ‘구원의 빛’이 되기를 기대한다. 20년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던 한국 영화의 독창성이, 이제 스스로 빛이 되어 세상의 모든 스크린을 다시 밝혀 줄 날을 기대해 본다.

최승호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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